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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를 보내며
유방암 4기.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도 듣지 않았다. 8개월째, 호흡 곤란이 심해지는 딸아이. 응급실에 도착해 인공호흡기를 물리니, 헐떡이던 숨을 잠시 고르고 “아 이제 좀 괜찮아졌어. 아빠! 어차피 한세상 살고 가는 건대 뭐. 그 동안 잘 살았잖아∼” 세상을 달관한 듯 했다. 이때만 해도 죽음은 상상 밖이었고, 호전되리라 기대했다.
의사는 그래프 상의 모든 데이터가 최저이며, 특히 폐 전이가 심각해, 임종단계임을 밝히며,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한 서류를 보여주었다. 당황스러웠다. 아프면서도,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런 결정을 한 딸아이를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진다. 못난 애비라는 자괴감이 든다.
응급처치 가능 입원실에서 밤을 새운 아내와 교대할 때, 딸아이는 혼수상태에서 앓는 소리를 규칙적으로 냈다. 청각이 가장 오랫동안 열려있다고 해, 탄생의 기쁨과 즐거웠던 가족여행의 추억, 사철의 봄바람 찬송가를 틀고 따라 부를 때, 신음도 잦아들고 평온해졌다. 곱고 맑은 비구니의 모습이다. 12월 12일 17시 44분.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41세.
영정 속 딸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아빠!” 하며 미소 짓는다. 지인들이 찾아와 위로하면 애써 참았던 눈물이 또 흐른다. 전화를 받아도, 문자를 확인해도 그렇다. 부모가 돌아갔을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벽제 승화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가족과 친지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부모 형제가 잠들어 있는 남한강공원묘원에 봉안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배려심 깊은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외적 충격은 안으로 삭였습니다. 참으로 착하고 곱고 바른 아이였습니다. 우리 슬기! 부디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서 무한 자유를 만끽하며, 못다 이룬 너의 꿈을 실현하길 바란다. 잘 가라.
2024년 12월 15일
영원한 이별을 고하며 아빠가
동기님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번 제 여식의 상에 조문, 문자, 전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큰 위안을 얻었고 무사히 장례를 마쳤습니다. 이제 조금씩 일상으로 적응해나가려 합니다.
마땅히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서면으로 인사드리게 됨을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2월 21일 김재동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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