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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2,000리, 산티아고 도보순례(徒步巡禮)
운죽(雲竹) 박형규(朴炯圭)
지난 해 9월 2일부터 10월 11일까지 40일간, 7년 여 근무하던 직장에서 자진 퇴사하고 순례에 필요한 경비충당을 위해 은행에서 거금을 대출받으며 비장한 각오와 결심으로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순례에 나섰다. 스페인 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Saint James of the Campus of the Stellar Stars: 별들이 반짝이는 들판의 야고보 성인)는 프랑스 국경도시 생장 피에 드 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서쪽으로 2,000리나 이어지는 장거리 도보 순례길의 종착지이다.
스승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자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열두 제자 중 야고보는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지만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 7년을 보낸 후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헤롯왕에 의해 참수를 당해 12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는데 순교 후 야고보의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배에 실어 지중해에 띄웠다. 다행히 그 배가 스페인 땅에 닿게 되자 그들은 어느 들판에 그 유해를 묻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묻혀진 자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가 800년이 지난 후 은둔 수도사 펠라기우스가 유난히 여러 별들이 빛을 비추는 특정한 장소를 보고 주교에게 알려 그곳이 바로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장소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2, 000여년 전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야고보의 무덤은 지금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순례길을 완주한 순례자들의 가슴에 깊고도 진한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경로는 아홉 군데나 있는데 우리 일행이 택한 길은 스페인 국경 근처에 있는 프랑스 남서부 농촌,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Pamplona, Burgos, Sahagun, León, Logroño, Sarria 등의 도시를 거쳐 산티아고(Santiago)까지 걸어가는 약 800km(2,000리)의 장거리 동서횡단로였다.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아 산티아고까지 가면서 수많은 카페, 식당, 편의점, 성당, 수도원, 호텔, 알베르게(Albergue: 여행자 숙소) 등 마을 곳곳에서 순례를 증명하는 인증 도장을 받는 일은 힘들면서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인증 도장을 열심히 받은 덕에 순례자 여권의 앞과 뒷면 (30+40 =70칸)을 다 채웠는데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극심한 폭풍우 속에 3시간 이상을 걸어간 후 도착한 마을의 작은 산 정상에서 여러 음식, 야채, 과일, 음료수와 간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현지인들 중 영어가 유창한 백인 소녀가 빨간 심장 모양의 도장을 빈 칸에 찍어주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순례길 되세요!’ 라는 문장을 써 주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사나운 폭풍우와 자갈길과 진흙탕과 벌이던 험난한 고투와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거기서 푸짐하게 음식을 대접받은 후 소액의 후원금을 진열대에 올려 놓으면서 앞으로의 삶은 타인에게 덕행과 선행을 실천하면서 좀더 너그럽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겠구나 하고 다짐했다.
순례길 첫날은 프랑스 농촌 마을의 험난한 피레네 산맥을 넘는 고된 일정에서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오르막을 걸어 1,430m의 정상까지 20여 킬로미터를 올라가야 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짙은 안개와 비바람 속에 숨은 가쁘고 힘들었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千里之行始於 足下)’라는 각오로 지팡이에 힘을 주며 걷고 또 걸었다. 힘든 보행 속에도 양옆으로 펼쳐진 소, 말, 양들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지며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졌다. 길 중간중간에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문양과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 거리와 화살표가 그려진 순례용 표지석이 어김없이 서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었다.
34일간 끝없이 이어지는 도보순례길에서 많은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순례길을 함께 걷는 순례자로서의 동질감에 서로에게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순례길 되세요!)’ 라는 인사를 나누면서 길가 양옆에 있는 나무끼리 머리를 맞대고 있는 나무 터널도 지나고, 끝없이 펼쳐진 야생 흑딸기 덤불, 포도 밭, 사과밭, 해바라기 밭, 무우 밭, 옥수수 밭, 수박 밭, 호박 밭 등을 지날 때면 따가운 햇살 사이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도 저절로 심신이 치유되어 우주와 대자연에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 나왔다.
걷기 시작한 지 34일째 되는 날 우중에 마침내 산티아고의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 도착해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 끼여 성당에 입장했다. 우리 일행은 산티아고 대성당의 주교가 발급하는 ‘완주증(Authenticating letter of Pilgrimage Accomplishment)’과 ‘거리 증명서(Distance Certificate)’를 받은 후 서로 감격적인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순례길 완주에 대한 감사기도를 올리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으며,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또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대성당 광장에는 순례 길을 완주한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 뿌듯한 성취감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다음으로 간 곳은 까미노(Camino, 巡禮)의 시작점인 0km 표지판이 있는 땅끝마을 피니스테라와 묵시아였다. 어린애들처럼 모두 0km 표지판을 붙들고 인증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길이 시작되는 땅끝마을까지 방문하는 순간 산티아고 순례길의 길고 험난한 대장정은 마침내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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